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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책 속 미술관] 엘 그레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1587-1592년. 캔버스 위에 유화, 121.5 x 105cm.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이탈리아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자리 잡은 트레 폰타네 성당(Chiesa  di Tre Fontane, 54쪽 참조)은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정열적인 인생의막을 내리고 참수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오로의 목을 올려놓고 칼로 쳤던 돌기둥이 보관되어 있고, 처형 직후 바오로의 목이 구른 세 군데 자리에서 샘이 솟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세 개의 샘, 곧 ‘트레 폰타네’가 있다.
 
라틴어로 ‘작은 조각상’을 뜻하는 이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 불렸던 사도 바오로는 원래 벤야민 지파의 독실한 유다교인이자 엄격한 바리사이로, 스테파노 성인의 처형을 열렬히 지지했을 만큼 그리스도인을 무참히 박해하고 이들을 박멸하려 혈안이 되었던 사람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인은 이 가혹한 죽음의 시련을 피해 다마스쿠스로 달아났으며, 바오로는 이들을 잡으려 집요하게 추격을 하고 있었다.
 
거의 다마스쿠스가 보일 정도에 왔을 때, 돌연 하늘에서 번개와 같은 강한 빛이 나오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울은 그 광채에 눈이 멀고 그 소리에 놀라 땅에 넘어졌다. 잠시 후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그분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고 하셨다. 그때 사울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부름에 응하는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다.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조를 비롯한 역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빛에 놀라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허우적대며 눈이 멀어 앞을 보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사울의 모습을 그려 ‘바오로의 개종’이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나 16세기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톨레도의 화가’ 엘 그레코(1541-1614년)는 바오로를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랑을 생활화하며 서간을 기술하는 따스한 내면의 지식인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교회의 반석이며 선교의 주보로 추앙받는 두 사도, 곧 초대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 두 사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두 사도는 65년 네로 황제의 대박해 중 함께 순교했으며, 이들의 축일이 공히 6월 29일이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베드로와 달리 바오로는 로마인이라는 이유로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받아 죽었기에, 처형된 큰칼이 그의 상징물이 되었다. 바오로가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집을 의미하는 커다란 책 또한 그의 도상적 상징물이다.
 
그림에 나타난 두 사도는 경전의 해석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중인데, 이들의 모습이 결코 성인들답지 않은 것이, 엘 그레코가 의도한 바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가는 이들의 인간적인풍모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신앙을 증언하는 것이다. 왼쪽의 베드로가 흰색의 머리에 나이 들고 겸허한 자태를 보이는 반면, 오른편의 바오로는 열의와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의 모습이라는 대조를 보인다.
 
그림의 바오로를 보면, 흔히 그림에 그렇게 나타나듯 푸른색 튜닉 위에 붉은색 외투를 입은 사도의 모습이며, 고결한 얼굴에 머리숱이 적고, 길고 검은 턱수염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그 넓은 이마가 보여주듯 지적이며 정열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경전을 짚은 그의 왼손은 신앙복음을 향한 바오로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오른손의 반을 펼친 손가락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과 설득을 표현하고 있다. 칼 모양의 각진 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야하는 설교자의 본분을 말한다. 그리고 그의 확고한 신앙에서 비롯된 강렬한 눈빛과 결의에 찬 표정이 말씀이라는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이런 신앙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의 붉은색 망토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바오로의 희고 밝은 오른손위에 그 얼굴과 표정, 푸른색 튜닉에 노란 망토가 의미하는 만큼이나 겸허한 복종의 자태로 그려진 베드로의 오른손은 검게 그을린 것이 노동자의 손이다. 이 손은 컵 모양으로 그려져 마치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 사려 깊고 사색적인 베드로의 내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의 시선이 바오로가 지적한 경전을 향해 기울어있는 것이, 바오로의 해석에 대한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베드로의 왼손은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는데, 이 열쇠는 천국의 열쇠로 베드로의 도상학적 상징물이다. 그 손이 열쇠를 꼭 쥐고 고리 부분만 남긴 것으로 보아, 겸손과 복종의 미덕과 기도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자세가 천국의 문 곧 하느님 세계로 가는 신앙의 본분임을 은밀하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손 역시 결연한 의지와 강한 권위를 지닌 손으로 그려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만큼 신앙의 길은 복종의 마음에서 비롯된 권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인가?
 
이처럼 두 사도의 상반된 자태, 상하로 교차하는 손의 자세는 신앙의 길이 서로 다른 것의 상호보완과 조화, 균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열정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과 아울러 지혜와 사랑을 통한 겸허하고 부드러운 마음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의에 의해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함이 잘못되지 않도록 지혜와 경험의 관록이 보살피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신앙이요 사랑임을 다시금 일깨우지 않는가?
 
이런 두 마음을 가진 존재가 바로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인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에 베드로와 바오로의 존재가 늘 있는 것이다. 이런 열정과 겸허라는 그 상반된 요소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비로소 신앙의 큰문이 열리는 것인가? 그림의 뒷부분, 두 사도 사이로 흐리고 작게 난 문이 우리 스스로 열어야 할 그 천국의 문이 아니고 무엇일까? 엘 그레코는 그 천국의 문을 열 열쇠가 바로 열정적이며 희생을 전제로 한 사랑의 신앙임을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코린 13,7).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g/greco_el/10/1003grec.jpg)

자료 출처 : 굿뉴스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