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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바오로의 해

성화로 보는 사도 바오로의 개종 순간

[성화로 보는 바오로의 개종]

 

천재들 붓으로 재현된 바오로의 개종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모퉁잇돌이라면 사도들은 교회를 떠받치는 기둥들이다.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이 기둥들 중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래서 교회는 같은 날 순교한 두 사도를 기념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29일)을 함께 지내고 있다. 또 성 베드로(대성전)사도좌 축일(2월22일)에 견주어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축일(1월25일)을 지낸다. 교황은 교회 전통에 따라 매년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기도 한 1월25일이면 로마 외곽에 있는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 바오로 사도의 개종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교회 전통은 성화에도 영향을 끼쳐 제단 좌우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과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장면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맞아 바오로의 개종 장면을 묘사한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 작품을 통해 이날 축일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도 바오로의 개종은 서기 33년께 바오로가 예루살렘 대사제로부터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압송하라는 임무를 받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사도 바오로가 진술한 개종 체험담을 구성하면 이렇다. 율법주의자인 바오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의 제자들을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이단자들로 생각하고 이들을 박해하는데 앞장 섰다. 바오로는 그 날도 예루살렘 대사제와 원로단의 명을 받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다.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바오로 둘레를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렸다. 바오로는 그 광채에 눈이 멀게 되고 소리에 놀라 땅바닥에 엎어진 채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라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바오로는 함께 간 일행들도 빛을 보았지만 예수의 음성은 자신만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예수의 현현을 목격한 바오로는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간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진실한 통회로써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예수가 지시한 대로 다마스쿠스에 사는 하나니아스에게 가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사도 9,1-19; 22,3-21; 26,9-18 참조).

 

 

미켈란젤로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 디 루도비코 부우나로티 시모니(1475~1564, 이하 미켈란젤로)는 1542년 그의 후원자인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년) 의뢰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옆에 있는 바오로 경당 천장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작품을 그렸다. 프레스코화인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75세가 되던 1550년에 완성됐다. 미켈란젤로는 1541년 시스티나 경당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이후 성 베드로 대성전 설계에 전념했다.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프레스코화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바오로의 개종 사건을 흐린 채색을 사용해 표현하고 있다. 원근법으로 배경을 단순하게 처리하면서도 다마스쿠스 성채의 윤곽만은 비교적 뚜렷하게 표현해 바오로의 개종 사건이 다마스쿠스 인접 지역에서 일어났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하늘에는 천사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강하면서 오른손을 뻗어 바오로에게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 빛에 놀란 바오로는 말에서 떨어져 땅에 엎어져 있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양 손으로 바오로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다. 혼비백산한 바오로의 일행은 머리를 감싸거나 손을 뻗어 빛을 가리면서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으며, 마부는 요동치는 말의 고삐를 두 손으로 잡고 진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바오로는 이 혼란한 상황에도 감긴 눈으로 하늘을 응시한 채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상근(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이 작품은 작가의 관점보다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그렸다"면서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까지 바오로의 개종 사건의 목격자로 포함시키려는 듯 답답할 정도로 화면 구석구석에 군중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이 그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작품이 후기 르네상스 작가주의 정신을 반영했다면 카라바조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 화풍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데 카라바조(1571~1610, 이하 카라바조)는 17세기 회화에서 가장 많이 쓰인 '명암법'을 시작한 작가로 렘브란트와 루벤스,벨라스케스 등에게 영향을 끼쳐 바로크 시대를 연 천재 화가다.

 

17세기 초 '로마의 새 미켈란젤로'인 카라바조는 교황 클레멘스 8세(재위 1592~1605년)의 재무장관인 티베리오 체라시 추기경 의뢰로 1600년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을 그렸다. 1600년 희년을 기념해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롤로 성당 제단화로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작품과 함께 전시될 목적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50년 전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와 달리 캔버스를 이용한 유화다.

 

먼저 상세하게 밑그림을 그리는 미켈란젤로와 달리 카라바조는 밑그림 없이 붓가는 대로 이 작품을 그렸다. 또 미켈란젤로가 비록 흐리게 채색했지만 색감을 화려하게 표현한 것과 달리 카라바조는 자신만의 독특한 명암법(테네브리즘 기법)을 이용한 단순한 구도로 바오로의 개종 사건을 표현했다.

 

카라바조는 많은 군중을 등장시킨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달리 1601년에 완성한 작품에 땅 바닥에 엎어져있는 바오로와 말, 마부만을 등장시켰다. 카라바조는 명암법을 이용, 배경 전체를 어둡게 해 암흑 속에서 구원의 빛이 바오로에게 쏟아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미켈란젤로 작품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따스한 빛이 말의 넓은 잔등과 바오로의 온 몸을 감싸고 있다. 바오로는 물론 그의 말과 마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완성된 카라바조의 이 작품을 처음 본 산타 마리아 델 포롤로 본당 신부는 분개했다고 한다. 그는 "왜 말을 그림 중앙에 배치하고 그 밑에 사도 바오로를 그려 놓았느냐. 말이 하느님이냐"며 카라바조를 몰아세웠다. 이 말을 들은 카라바조는 "하느님은 빛 안에 계십니다"라고 답했다.

 

미술 평론가들은 카라바조의 고백처럼 "바오로의 개종은 지극히 내면적 사건이었기에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신비스런 한줄기 빛만 갖고도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서 "카라바조의 천재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을 표현한 두 성화 작품에서 보았듯이 가톨릭 교회가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바오로 사도의 개종이 갖는 구원사적 의미 때문이다. 바오로가 개종하게 된 것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바오로에게 당신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 바오로는 회개하게 됐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게 된 것이다.

 

바오로도 자신의 개종에 대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 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다"(갈라 1,15-16)고 고백했다.

 

[평화신문, 제856호(2006-01-22), 리길재 기자]

자료 출처 : 굿뉴스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