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제대 초
① 언제, 몇 개를 놓을 것인가?
지난 주일 주님 봉헌 축일을 기념하며 본당에서는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했을 것입니다. 내친김에 제대 초에 관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히 전례 담당 수녀님이나 제의실 담당 봉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에서는 제대 초의 개수뿐만 아니라, 재료와 위치까지 까다롭게 정해져 있었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규정이 대폭 간소화되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117항 딱 한 곳에서 제대초의 개수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거행에서 제대 위나 곁에 적어도 두 개, 특히 주일이나 의무 축일 미사에서는 네 개나 여섯 개, 또는 교구장 주교가 집전한다면 일곱 개의 촛대에 촛불을 켜 놓는다.”
이 규정을 따르면서 피해야 할 오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례 거행에 따라 ‘반드시’ 초의 개수를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117항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어느 미사에서든지, 특히 제단이나 제대가 협소한 상황이라면, 2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교구장 주교가 거행하는 순회 미사 때에도 ‘일곱 개 또는 적어도 두 개’(『주교 예절서』 125항 참조)의 제대 초를 사용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17항에 나오는 제대 초의 개수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촛불은 공경과 축제의 표지”(「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7항)이므로, 제대 초의 수를 늘리는 것은 전례일의 ‘등급’이 아닌 ‘축제’의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은 「전례일의 등급과 순위」에서 1등급에 속하지만 단 두 개의 초만 사용합니다. 이날이 가장 중요한 날에 속하기는 하지만 ‘축제의 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제대 초의 개수에 관한 실행 원칙을 준비해 봅시다. 먼저, 현재 한국 본당들에서 일반 적으로 통용되는 ‘2개-4개-6개 시스템’을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1)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을 포함한 모든 평일과 기념일에는 가장 기본적인 개수(2개)를 놓는다. 단, 다음의 예외가 있다.
• “부활 시기를 시작하는 팔일은 부활 팔일 축제를 이루며 주님의 대축일로”(「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24항) 지내기 때문에 대축일과 같이 6개의 초를 놓는다.
• 이어지는 부활 시기 평일은 “마치 하루의 축일처럼, 나아가 하나의 ‘위대한 주일’로서 기뻐하고 용약하며 경축”(「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22항)하기 때문에 주일과 같이 4개의 초를 놓는다.
•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는 사제직과 성찬 제정을 특별히 경축하는 날이고 성야 미사 전 마지막 미사 거행이기 때문에 6개의 초를 놓는다.
• 위령의 날은 연중 주일과 겹치더라도 거행이 우선시되고, 죽은 모든 이들의 영원한 행복을 기도하는 날이기에 주일과 같이 4개의 초를 놓는다.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2) 전례 시기와 상관없이 모든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임을 드러내기 위해 4개를 놓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특별히 기념하는 날(주님의 성탄과 공현, 세례,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등)이 주일에 오면 축제의 성격을 한층 드높이기 위해 6개를 사용할 수 있다.
3) 모든 축일에는 4개를 놓는다.
4) 모든 대축일 미사에는 6개를 놓는다.
5) 보편 전례력에는 대축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 교회에서 특별히 성대하게 거행할 수 있는 미사(예를 들어 설이나 한가위 미사,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미사)나 예식 미사(세례, 견진, 서품, 혼인 등)에는 6개(또는 경우에 따라 4개)의 초를 사용하여 그날의 성격을 한층 더 강조할 수 있다.
‘2개-4개-6개 시스템’ 대신 6개 놓는 날의 초 개수를 모두 4개로 줄여 ‘2개-4개 시스템’만으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교구장 주님께서 집전하는 미사에는 앞서 말했듯이 7개의 초를 놓거나, 상황에 따라 그냥 2개나 4개를 사용합니다.
② 제대 초를 놓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
제대 초를 놓을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7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공경과 축제의 표지이기 때문에 모든 전례 행위에 필요하다. 촛대는 제대와 제단의 구조를 고려하여 제대 위나 가까이에 놓아 전체가 조화를 이루게 하고, 신자들이 제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나 제대 위에 놓인 것들을 쉽게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촛불은 전례 거행의 필수 요소지만, 전례가 진행되는 데 부담이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이 제단이나 제대 크기를 고려해서 초와 촛대의 크기나 개수를 현명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또한 제대를 향한 신자들의 시선이 ‘촛불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높이나 위치를 잘 조절해서 배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자들이 제대 위의 예물과 사제의 전례 동작을 잘 볼 수 있도록 제대의 가로 면이 아니라 세로 면에 초를 놓을 수도 있고, 제단 바닥까지 오는 긴 촛대를 사용하여 제대 옆이나 둘레에 놓기도 합니다. 가지가 4개 또는 6개 달린 하나의 촛대를 사용해서 제대 앞이나 옆에 두는 방식도 있습니다.
제대 초에 관해서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규정이 아니라 하나의 제안입니다. 실제 본당에서 합리적인 이유에 따라 잘 실행되고 있는 것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전례 준비를 담당하는 봉사자들이 분명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근거와 이유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할지 그 과정을 제안한 것으로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0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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