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인/바오로의 해

바오로의해 기도와 묵상

기도 및 묵상

   
 
 

1. 기도문

  

 사도 바오로와 함께 드리는 기도
 

○ 사도 바오로를 통해 구원의 빛을 비추신 하느님,

● 저희가 거룩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

    항상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 사도 바오로와 같은 충실한 제자들을

    많이 보내 주시어

    더 많은 이들이 구원의 복음을 알게 해 주소서.

○ 저희도 바오로 사도의 열성과 믿음을 본받아

    이 땅에 힘차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 바오로 사도와 모든 성인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2008년 6월 2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인준)

   

   

 바오로 사도가 들려주는 사랑의 찬가(1코린 13,1-8)
 

 내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2. 기도 방법

  

1. 성호경
 

2. 묵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아래 3번의 묵상을 참조)

    이책에 수록된 묵상 혹은 그날 미사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해도 됩니다.
 

3. 성체 앞에서 드리는 개인 기도

    자유 기도를 바치거나 '신령성체를 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 신령성체를 위한 기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

   참으로 성체 안에 계시는 당신을 사랑하오며

   제 안에 모시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은 비록 당신을 직접 모실 수 없사오나,

   당신은 신령한 방법으로 제 마음에 오실 수 있나이다.

   이제 간구하오니

   영적으로 제게 오시어

   길이 머무르소서.

   또한 제가 당신을 떠나지 않고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4.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성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5. 묵주기도 1단 또는 '사도 바오로와 함께 드리는 기도'
 

† 사도 바오로와 함께 드리는 기도

○ 사도 바오로를 통해 구원의 빛을 비추신 하느님,

● 저희가 거룩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

    항상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 사도 바오로와 같은 충실한 제자들을

    많이 보내 주시어

    더 많은 이들이 구원의 복음을 알게 해 주소서.

○ 저희도 바오로 사도의 열성과 믿음을 본받아

    이 땅에 힘차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 바오로 사도와 모든 성인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6. 성호경    
 


3. 묵상


   묵상 1 (월) : 죄 없는 이웃을 괴롭히다

   묵상 2 (화) : 주님을 만나 회심하다

   묵상 3 (수) : 선교를 시작하다

   묵상 4 (목) : 전도 여행을 시작하다

   묵상 5 (금) : 배척당하고 실패하다

   묵상 6 (토) :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묵상 7 (일) : 로마로 압송되고 순교하다

 

 

묵상 1 (월) : 죄 없는 이웃을 괴롭히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7,54-8,3]

   초대교회의 일곱 부제 중 한 사람인 스테파노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는 것을 시기한 유다인들이 스테파노에게 하느니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청년 바오로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했기에 스테파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거짓으로 증언한 사람들의 겉옷을 맡아주며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안식일이나 정결례처럼 유다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율법의 규정을 무시하는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깊은 내면을 바오로 사도가 아직 알아보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주장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활은 세상 끝 날에나 있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

   청년 바오로처럼 나도 내 신념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시다. 


 

묵상 2 (화) : 주님을 만나 회심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9,1-25]
 
   다혈질의 청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없에 버리려고 신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남자든 여자든 그들을 끌어다 감옥에 넘겼습니다.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다마스쿠스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온 바오로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맞이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던 것일까요?바오로 사도는 사흘 동안 앞을 볼 수 없었고, 먹고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알리도록 주님께서 선택하신 그릇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순간부터 교회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전파자로 철저히 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때의 일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다"(필리 3,12)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렸습니다(필리 3,13).

    나의 삶에서 :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주님은 날마다 내가 당신께로 회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 드립시다.


 

묵상 3 (수) : 선교를 시작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9,20-31]
 
   얼마 전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뽑으려고 하던 청년 바오로가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믿는 바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참 놀라운 실천입니다.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급변한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다마스쿠스 사람들은 바로로 사도를 미워하여 체포하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 바오로 사도의 제자들이 밤에 그를 바구니에 실어 성벽에 난 구멍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그 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난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일도 있습니다."(2코린 11,32-33) 그 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후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가서 한동안(36-44년경) 전도하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나는 이러저러한 조건들을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믿는 대로 실천에 옮깁니까? 나는 나의 믿음을 얼마만큼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까?


 

묵상 4 (목) : 전도 여행을 시작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13-14장]
 
   유다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다른 사도들과 달리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5년경 바르나바와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와 함께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중해 동부 지역을 세 차례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도 여행을 했는데, 이 위대한 여행의 거점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였습니다. 제1차 전도 여행 중에 겪은 가장 황당한 일은 리스트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오로가 앉은뱅이를 고쳐 주자 사람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바오로를 헤르메스 신으로 여겨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두 사도는 자신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을을 전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제사 지내려는 그들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이 곳 리스트라는 또한 바오로의 애제자 티모테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나의 삶에서 :

   자신들은 신리 아니라 사람이라 고백하며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바오로 사도처럼 나도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묵상 5 (금) : 배척당하고 실패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15,36-18,22]

   50년경 바오로 사도는 실라와 함께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유럽 대륙에 첫 번째 교회가 생기는데, 바로 필리피 교회입니다.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생계와 전도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유일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귀신 들린 하녀를 고쳐준 바오로 사도는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그 주인의 고발로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습니다. 베로이아에서 전도할 때는 테살로니카 유다인들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제자들을 남겨둔 채 홀로 아테네로 가야 했습니다. 아테네는 당시 정치·경제적으로는 몰락했지만 문화적 수준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의 설교는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철학자들은 "저 떠벌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가?라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 한 바오로의 전교는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우리도 선의(善意)를 가지고 좋은 일을 했는데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반대에 부딪히거나 인간 관계에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끝까지 선의를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하느님께 청해 봅시다.


 

묵상 6 (토) :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18,23-21,16]
 
   53년경 바오로 사도는 세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쓴 편지들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신약성경의 서간이 되었습니다. 에페소에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들을 썼고, 코린토에서는 자신의 사상을 총정리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를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 신학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 신학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이며,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 인물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입니다. 개신교는 그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보편 교회로서 어느 한 신학자에 치우침 없이 성경은 물론 전승들과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을 포함한 모든 신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 :

   바오로 사도 시대에도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 편, 아폴로 편, 케파(베드로 사도)편, 그리스도 편 등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1코린 1,10-17). 우리도 보다 넓은 마음으로 갈라진 형제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 7 (일) : 로마로 압송되고 순교하다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 [사도 27,1-28,15]
 
   58년경 바오로 사도는 카이사리아의 총독부 감옥으로 이송되어 미결수로 2년 동안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사도 23,12-24,27).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황제에게 항소합니다(사도 25,1-12). 그래서 그는 로마로 압송됩니다. 60년 가을, 카이사리아에서 출항하여 크레타 섬을 거쳐 항해하던 중 바오로가 탄 배는 파선당하고 맙니다. 바오로 사도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몰타 섬에서 석 달 동안 지냈습니다.

   로마에서 바오로 사도는 한 군사의 감시를 받기는 했지만 2년 반 동안 셋집을 얻어 비교적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일종의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면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들여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투신한 바오로 사도는 스테인에 가서도 전도하고 싶어 했는데(로마 15,24-28), 그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바오로 사도가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 줍니다. 진정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오로 사도다운 최후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우리 각자의 삶에도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집니다. 나는 내 삶을 마칠 때 어떤 결산을 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