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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사짐 미정리/교리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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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탐구 생활(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듣는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듣는다 지난주에 이야기한 두 개의 식탁 가운데 첫 번째 식탁(말씀 전례)의 ‘메인 요리’는 기록된 하느님 말씀입니다. 성경 독서는 단지 인생 교훈이나 영적 생활을 위한 묵상 자료 제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에서 우리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시는 하느님 말씀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인간적 영역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의 특정 순간에 특정한 인간 공동체들을 향하여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의 각 권은 인간 저자의 문체, 특성, 신학적 관점, 사목적 관심 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성..
전례 탐구 생활(23) 두 개의 식탁 (23) 두 개의 식탁 우리가 사는 집은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중에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둘인데, 하나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거실(마루)이고, 또 하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밥을 나누어 먹는 부엌(주방)입니다. 옛날에는 부엌에서 상을 차려 마루나 방에서 밥을 먹었지만, 요즘에는 부엌에 식탁까지 갖추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공간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탁자나 상이 있습니다. 그 둘레에 앉아 밥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가족 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귀를 기울이고, 동생이 형에게 말을 걸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고, 할머니가 어린 손주의 코를 닦아줍니다. 이런 일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의 ..
전례 탐구 생활(22) 본기도 (22) 본기도 대영광송을 노래한 뒤에 사제는 “기도합시다.”(Oremus) 하고 말하며 잠시 교우들을 침묵으로 초대합니다. 이 말은 아주 오래된 표현으로, 그리스도교 이전 유대교 기도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초대의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런 기도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뒤에 따라 나오는 중요한 기도가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기도합시다.” 다음에 잠깐 침묵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2차 바티칸 공의회 미사 경본에 새로 도입된 요소입니다. 이때 교우들은 미사에 오면서 각자 마음속에 간직한 기도를 바치면서, 이날 드리는 전례 거행을 자신의 것으로 삼습니다. 우리 각자는 전례의 참관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전례 거행의 주체입니다. 이 침묵의 순간이 없다면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는 백성 전..
전례 탐구 생활(21) 자비송에서 대영광송으로 (21) 자비송에서 대영광송으로 대영광송을 부르는 날 시작 예식은 기쁨과 축제의 색깔이 더 질어집니다. 그래서 절제와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과 사순 시기에는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고, 간혹 위령의 날이 주일과 겹쳤을 때도 생략합니다. 주로 전례력상 대축일과 축일에 부르는 찬미가이지만 서품, 혼인, 견진 예식 같이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 거행 때도 부를 수 있습니다. 기쁨의 핵심은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다가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스스로 찾아 얻는 쾌락이 오히려 삶의 진정한 기쁨을 반감시켜 버린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대영광송이 표현하는 기쁨도 우리의 청원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부탁할 때 그 사람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의무가 ..
전례 탐구 생활(19)(20) 대영광송 – 말씀의 모자이크 (19) 대영광송 – 말씀의 모자이크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사제나 선창자가 대영광송을 시작하면 이제 전례의 분위기는 참회와 청원에서 기쁨 가득한 찬양으로 바뀝니다. 대영광송의 첫 소절은 베들레헴 들판에 울려 퍼진 천사의 노래에서 왔습니다. 천사는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이렇게 알렸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모든 미사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가 또다시 펼쳐지므로, 미사를 시작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잘 맞아떨어지는 일입니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세상에 드러났기에, 모든 미사 때마다 제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축성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현존하게 되..
전례 탐구 생활(18) 오랜 전통과 하나 되어 “키리에, 엘레이손!” (18) 오랜 전통과 하나 되어 “키리에, 엘레이손!” 2017년 새롭게 번역된 한국어판 「로마 미사 경본」은 자비송 원문의 한글 음차를 함께 수록하여, 번역문 대신에 그리스 말로 자비송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낯선 외국어를, 게다가 일상어로 쓰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된 성서 그리스어를 우리가 발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말 번역문이 있는데 성서 학자나 전례 학자가 아닌 우리가 구태여 원문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가질 법한 물음입니다. 우선 ‘외국어 울렁증’에 관해서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문이 번역문보다 짧고 한글 표기도 단순하여 어려운 발음이 없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크리스테, 엘레이손’. 이것이 전부입니다. 두 번째 물음 ‘굳이 원문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
전례 탐구 생활(17) 피조물의 연약함에 내리는 은총 (17) 피조물의 연약함에 내리는 은총 자비송은 참회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외침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청원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4세기에 이미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그리스말로 “키리에, 엘레이손”)라는 말로 전례 중에 바치는 청원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복음에는 자기네 삶에 필요한 치유와 도움을 구하려고 예수님께 다가와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눈이 먼 두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 20,30-31).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의 경우도 똑같습니다(마르 10,46-48; 루카 18,38-39). 열 명의 나병 환자 무리도 소리 높여 외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
전례 탐구 생활(16) 자비를 베푸소서 (16) 자비를 베푸소서 고백 기도에서 자신의 죄를 세 번(생각과 말과 행위로) 살핀 우리는 이어서 세 쌍의 자비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사실 우리가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의 자비를 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정녕 주님의 날은 큰 날 너무도 무서운 날 누가 그날을 견디어 내랴?”(요엘 2,11) 하고 예언자가 외쳤던 것처럼, 지극히 거룩하고 깨끗한 주님의 현존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을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자비가 실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