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에 이코니움(Iconium)이라고 불리던 코니아에 있는 성 바오로 성당 제대 모습입니다.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코니온에서 선교하다(사도 14,1-7)
1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코니온에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유다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설교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유다인과 그리스인이 믿게 되었다. 2그러나 믿기를 거부한 유다인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을 자극하여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만들었다. 3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설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통하여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시어, 당신 은총에 관한 그들의 말을 확인해 주셨다. 4그리하여 그 도시 사람들이 둘로 갈라져, 한쪽은 유다인들의 편을 들고 다른 쪽은 사도들의 편을 들었다. 5그런데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성녀 테클라(Thecla, 9월 23일, +100년경)
2세기에 기록된 묵시록적 작품과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는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Acta Pauli et Theclae)에 의하면, 성녀 테클라는 소아시아 지방 이코니움(오늘날 터키의 코니아, Konya)의 저명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사도 바오로(Paulus)의 개인적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성녀는 18세 때에 이코니움에 있는 오네시포루스(Onesiphorus)의 집에서 사도 바오로가 행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관한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례를 받은 성녀 테클라는 결혼 약속을 파기하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많은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 파혼당한 약혼자가 이코니움 지방 사람들을 선동하여 사도 바오로를 감금하도록 했고, 성녀 테클라는 감옥에 갖힌 사도를 몰래 찾아갔다가 들켜, 바오로는 추방당하였고 그녀는 화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성녀 테클라가 성호를 그은 후 불타는 장작더미에 던져지자 갑자기 비가 내려 불이 꺼졌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화형을 면한 그녀는 사도 바오로를 만나 동행을 간청하였고 결국 안티오키아까지 갔다. 안티오키아에 살던 알렉산데르(Alexander)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반했으나, 그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결국 무고를 하였다. 그래서 성녀 테클라는 야생 동물들이 있는 곳에 갇히기도 하고, 황소에 묶여 몸이 찢기기도 하고, 심지어 독사 굴에 던져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이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 성녀 테클라는 오늘날 터키의 이셀(Icel) 지역인 칼리카둠(Calycadum)의 셀레우키아 트라케이아(Seleukeia Tracheia)에 있는 동굴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역 의사들의 반발로 총독에게 체포되었는데 그때 성녀의 나이는 90세였다. 성녀 테클라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바위를 향해 달려가자 바위가 저절로 열리고, 그녀가 바위 안으로 사라지자 바위가 닫혀 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사도 바오로의 제자로서 최초의 여성 순교자였다.
코니아(Konya)
신약성경의 이코니온인 오늘날의 코니아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약 250km, 카파도키아에서 226km, 신약성경의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인 얄바츠(Yalvac)에서 180km 떨어져 있다. 코니아는 아나톨리아의 예술과 정치, 학문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며,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신비주의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334-33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점령되었고,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 사망 후 그의 부하 리시마쿠스 장군이 차지했다. 그 후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정권에 이어 페르가몬 왕국이 차지했다가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 왕 앗탈로스 3세가 임종에 이르러 왕국을 로마 공화국에 진상할 때 이코니온도 함께 넘어갔다.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코니아를 수도로 셀주크 제국을 세우면서 코니아는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사방에서 예술가와 건축가, 이슬람 관련 학자들이 몰려왔고 13세기 메블라나 신비주의 종파를 만든 루미(Mevlana Celaleddin Rumi) 역시 이 전성기 때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빙글빙글 춤을 추다가 비몽사몽간에 알라를 느낀다고 한다. 현재 코니아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셀주크 제국과 메블라나 신비주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사도 바오로는 제1차 전도여행 때(45-49년경)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어 이코니온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전도했다(사도 14,1-7). 코니아 시내에 있는 성 바오로 성당은 1910년에 세워졌으며 현재 예수의 작은 자매회 수녀님 두 분이 세계 각지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코니아 전체에 가톨릭 신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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