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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칙서『자비의 얼굴』 해설(3) - 자비는 교회 삶의 기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자비의 얼굴』 해설(3)

 


자비는 교회 삶의 기초이다.

 

교황은 교회의 사목활동이 모두에게 온유할 것을 요청하며, 교회의 신뢰는 자비와 연민의 사랑을 얼마나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는 길을 잊은 지가 오래된 듯하다. 오직 정의에 초점을 두는 유혹은 자비가 먼저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게 만든다. 교회에 자비가 없는 삶은 사막처럼 황폐하다.(10항)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도록 위임받았다. 쇄신된 사목활동의 주제도 자비이고, 새로운 복음화의 과업에서 교회는 자비를 증거하는 신뢰와 책임을 보여야 한다. 교회의 언어와 제스처들이 자비로 전달되어야 한다.

교회의 첫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회가 현존하는 어느 곳에서나 아버지의 자비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자비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12항) 교황은 자비의 성년을 주님 말씀의 빛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13항)


하느님 자비의 모습이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마태 18,12), 잃어버린 아들 등, 복음의 비유를 통해 볼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29-37)은 인간의 자비를, 돌아온 아들(루카 15장)은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고 있다. 공통점은 행동으로 자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후심판에서 주님이 판단하시는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자비하였나이다.


생태계에서 동물은 무리를 지으면서 돌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 죄에서 돌아올 수 없다. 곧 은총 없이 회개할 수 없고, 바른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자신이 치룬 삶의 비용에서 그것을 배웠다. 어떤 죄인도 홀로 회개할 수 없다. 강한 의지를 가졌든 약한 의지를 소유하였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어깨 위에 죄인을 둘러매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
므로 죄인은 은총이 자신을 인도하도록 청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힘에 따라 은총에 의해 협력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의지는 무장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희망이 없는 중환자에게 생명을 구해주는 의사는 아주 큰 기쁨을 경험한다. 자기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겨낼 때도 기쁨이다. 그런데 영생을 위해 영혼이 살아난다면 얼마나 더 큰 기쁨이겠는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요한 금구 성인은 우리가 하는 기도들 가운데 어떤 것은 허락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 뜻에 상
응하는 청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에 반하는 원의를 동의하지 않는다.

 

 

대전주보 2015년 10월 04일(나해) 연중 제27주일

곽승룡 신부 /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