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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그리고 나/찬미받으소서

제1장. Ⅰ. 오염과 기후변화 [20항 ~ 26항]

Ⅰ. 오염과 기후변화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20.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오염들이 있습니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노출은 건강에,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찍 사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리와 난방에 사용하는 연료에서 배출되는 다량의 연기를 흡입하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염도 있습니다. 이는 교통, 공장 매연, 토양과 물의 산성화 물질, 비료,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일반적인 농엽용 독극물을 통하여 발생됩니다. 상업적 이익과 관련된 기술이 이러한 문제들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기술은 문제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킵니다.

 

21. 여러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더불어 유해한 폐기물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해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대부분 생물학적으로 분해가 되지 않고 맹독성이며 방사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정과 기업 건설과 철거 현장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더불어 의료 폐기물, 전자 폐기물, 산업 폐기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게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 곳곳에서, 나이 드신 분들은 한때 아름다웠던 풍경이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 버린 것을 탄식합니다. 산업 폐기불만큼이나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들도, 비록 지역의 독성 물질 수치가 낮다고 하더라도 그 주민들의 몸속에 유독 물질이 축적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의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습니다.

 

22. 이러한 문제들은 버리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생산된 종이의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집니다. 우리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 과정이 우리의 모범이 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식물은 초식 동물들이 먹는 영양분을 합성합니다. 그다음에 초식동물은 육식 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유기 배설물이 배출되어 새로운 식물이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산업 체계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 끝에 나오는 쓰레기와 부산물의 처리나 재활용 능력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순환적 생산 방식을 채택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현재와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며, 재상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개발 효율의 극대화, 재사용, 재활용을 요구합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버리는 문화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극히 한정된 진척만을 이루었을 뿐입니다.

 

 

공공재인 기후

 

23. 기후는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입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기후는 인간 삶의 많은 필수 조건들과 관련되어 있는 복잡계입니다. 매우 확실한 과학적 견해들은 우리가 현재 기후 체계의 심상치 않은 온난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최근 수십 년간 온난화는 해수면의 지속적인 상승을 일으켰으며 개별 기상 현상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원인을 밝혀 낼 수는 없지만 심각한 기상 이변 현상의 증가와 온난화를 연결시켜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인류는 이러한 온난화에 맞서 싸우거나, 최소한 인간이 이러한 온난화를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근원들에 맞서 싸우려는 생활양식과 생산과 소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화산 활동, 지구 궤도와 축의 변화, 태양의 활동 주기와 같은 다른 요소들도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지만, 많은 과학적 연구는 최근 수십 년간의 지구 온난화가, 대부분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곧 이산화탄소, 메탄, 산화질소와 같은 화학 물질들의 농도가 매우 짙어졌기 때문에 주로 발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기체들은 대기 중에 집중되어서 지표면에 반사된 햇살의 열이 우주로 흩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세계적 에너지 체계의 중심인 화석 연료의 엄청난 사용을 기반으로 하는 개발 방식 때문에 문제가 더욱 악화됩니다. 토지 사용 변화, 특히 농사를 목적으로 한 삼림 파괴의 증가 또한 이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4. 다음으로 온난화는 탄소의 순환에 영향을 미칩니다. 온난화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조장하여 온난화된 지역의 물과 에너지와 농산물과 같은 필수적인 자원의 이용에 영향을 미치고 지구의 생물 다양성에 손실을 가져옵니다. 극지방과 고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려 매우 위험한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냉동되었던 유기물이 분해되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욱 증가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의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열대림의 감소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때문에 생기는 오염으로 해양이 빠르게 산성화되어서 해양 생태계의 먹이 사슬이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21세기는 예사롭지 않은 기후 변화와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로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해안이나 그 근접 지역에 살고 있고, 대부분의 거대 도시가 해안 지역에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해수면의 상승은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25.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입니다. 수십 년 안에 아마도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가난한 이들은 온난화와 관련된 현상에 특별한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계는 자연 보호 지역과, 농업과 어업과 삼림업과 같은 생태계에 관련된 일에 크게 의존합니다.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 제도의 해택을 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이 이주하게 되면 가난한 이들 또한 생계에 타격을 받아 자신들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을 안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제 협약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이 포기한 삶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비극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실한 대응은 모든 시민 사회의 기초인,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6. 더 많은 자원과 경제적 정치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문제를 호도하거나 그 증상들을 감추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의 일부 부정적 영향만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증상들은 현재의 생산 방식과 소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 부정적인 영향들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서둘러 정책을 개발하여 앞으로 몇 년 안에, 예를 들어, 화석 연료를 대체하여 재생 가능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고, 이산화탄소와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는 여러 기체들의 배출을 과감하게 감소시켜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매우 적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 기술 개발이 아직 필요합니다. 일부 국가들에게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지만, 그 비율은 아직 미미합니다. 에너지와 원료를 적게 사용하는 생산수단과 운송 수단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건물의 건축과 개조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직한 실천들이 보편화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당연하게 모두가 알고 있는 말들이다. 나 역시도 건강하냐?라고 물으면 자신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나의 생명을 갉아먹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무지했기에, 먹고살기 바빴기에, 기타 등등의 이유로 몸을 돌보지 않고 있는 지금의 나를 반성해 본다. 열심히 일하면 되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은 잘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유아적인 생각이었을까?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더러도, 그렇게 분리된 종이들이 다시 쓰레기장으로 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면, 한숨이 나온다.

 

코로나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수천 년 뒤에 보면, 우리가 폐총을 보듯 마스크가 잔뜩 나오는 층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층을 관찰하고 지금의 우리를 예측하는 것이 인류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마 그때엔 우리가 지어놓은 원자력 발전소의 폐물들이 우리가 존재했을을 알려 주는 지표가 되지 않을까?

 

지금 가장 간단하게 쉽게 싸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완벽한 방법이 아님을 왜 자꾸만 잊는지 모르겠다. 내가 결정할 수 없기에 내가 관여할 수 없기에로 미루기에 이제는 너무 무책임한 것을 안다. 내 팔을 뻗어 그 안에 있는 것이라도, 바꾸어 보자. 작은 것 하나라도.

 

잘못을 할 수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당장에 방법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마음에 두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찾을 수 없다고 노력을 포기하면, 내가 지구에 발을 듣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듬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