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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그리고 나/찬미받으소서

제1장. Ⅵ. 미약한 반응 [53~59항]

Ⅵ. 미약한 반응

 

53. 이러한 상황은 누이인 지구가 세상의 모든 버려진 이들과 더불어 부르짖으며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을 호소하게 합니다.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우리의 공동의 집을 아프게 하고 잘못 다룬 것처럼 그렇게 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하느님 아버지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바라신 그대로 존재하고 평화와 아름다움과 충만함을 위해 당신의 계획에 맞갖은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위기에 맞서는 문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후손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모든 이를 고려하여 현재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지도력이 부족합니다. 한계를 분명히 정하고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법적 틀을 반드시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술-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힘의 구조가 우리의 정치는 물론 자유와 정의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54. 국제 정치의 반응이 얼마나 미약한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환경에 관한 세계 정상 회담의 실패는 우리의 정치가 기술과 금융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보여 줍니다. 너무나 많은 특정 이익 단체들이 있고, 경제적 이익 단체들은 손쉽게 공동선을 장악하고 그들의 계획에 영향이 없도록 정보를 조작하기에 이릅니다. 『아파레시다 문헌』은 "생명의 원천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경제집단들의 이익이 천연자원을 다루는 일에서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경제와 기술의 동맹은 그 즉각적 이익과 무관한 모든 것을 결국 배제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기껏해야 피상적인 말, 어쩌다 하는 자선 행위, 마지못해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기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사회 안에 있는 단체들이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기울이는 참다운 노력은 낭만적인 환상에 근거한 골칫거리나 회피해야 할 걸림돌로 여겨집니다.

* 『아파레시다 문헌』, 471항

 

55. 일부 국가들은 점진적으로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더욱 효과적인 규제를 개발하며 부패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태계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나쁜 소비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습관이 사라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냉방기 사용의 증가와 그 영향을 들 수 있습니다. 판매를 통하여 즉각적 이익을 얻는 시장은 더 많은 수요를 자극합니다. 지구 밖에서 이 세상을 관찰하는 이가 있다면 때로는 자기 파괴적으로 보이는 그러한 행동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56. 그러는 사이에 경제 세력들은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앞세우는 현재의 세계 체제를 계속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인간 존엄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환경 파괴와 인간적 윤리적 타락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ㅁ낳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잘못도 하지 낳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방해 공작으로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11.24., 56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제2판 12쇄), AAS 105(2013), 1043면

 

57. 어떤 자원이 고갈된다면, 귀중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결국 새로운 전쟁의 상황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쟁은 언제나 환경과 풍부한 민족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누군가 핵무기와 생물학적 무기 사용을 고려한다면 그 위험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화학전, 세균전, 생물전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도 자연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공격 무기의 개발을 위한 실험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치는 새로운 갈등을 예견하고 그러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들을 제거하는 데에 커다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경제 세력들은 이러한 노력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고, 정치적인 계획에는 넓은 시각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급하고 반드시 실행할 필요가 있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정치인들로 기억될 뿐일 터인데 그 누가 권력을 잡으려 하겠습니까?

*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89.12.8., 12항 『회보』 제56호(199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AAS 825(1990), 154면

 

58. 일부 국가들에서는 환경 개선에 대한 긍정적 모범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오염되었던 강을 정화하고 원시림을 복구하였습니다. 환경 개선 계획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졌습니다. 아름다운 건물들을 세우고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생산과 대중교통 개선에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조치들로 세계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가 여전히 긍정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기에, 우리의 모든 한계에도 관대함과 연대와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이 샘솟을 수밖에 없습니다.

 

59. 또한 자기만족과 경박한 무책임을 부추기는 거짓되거나 피상적인 생태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담한 결단이 요구되는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종종 그러하듯이 , 우리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유혹에 빠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염과 훼손에 관한 몇 가지 피상적 표징을 제외하고는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고 지구도 한동안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회피적 태도는 우리가 현재의 생활양식과 소비의 방식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이는 악행들을 알아채고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악행들을 조장하는 길입니다.

 

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보시니 좋았다. 

결론은 어쩌면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시니 좋았다." 과연 그분이 보시기에 이곳은 좋은가? 나는 좋은가? 나의 삶은 보시기 좋은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답을 찾을 때까지.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 실천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룸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전등 하나를 끄는 작은 노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