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다양한 의견
60. 끝으로 우리는 이러한 상황과 가능한 해결책과 관련하여 다양한 시각과 사조가 전개되었음을 인정합니다. 한 극단에서 발전하는 신화를 맹목적으로 믿으며, 생태 문제는 윤리적 성찰이나 커다란 변화 없이도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적용으로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극단에서는 인간과 그 개입이 위협이 될 뿐이라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위협하므로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줄이고 모든 개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현실성 있는 미래 계획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에서 중용을 취한 것이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이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61. 많은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교회가 단정적인 견해를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견들을 존중하며 솔직한 토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공동의 집이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언제나 해쳐 나갈 길이 있고, 길을 바꿀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급속한 변화와 훼손으로 상황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들을 대규모의 자연재해와 사회적 위기, 심지어 경제 위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계의 문제는 개별적으로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위험에 놓인 지역이 있으면, 종말론적인 예언을 차치하고라도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리 교육』, 3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24/1(2001), 178.
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늘 발전만 할 수 있을까? 나만의 생각일까? 결국은 멸망으로, 소멸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촛불 하나도 영원히 불을 밝힐 수는 없다. 태양도 언젠가는 식는다. 인간이 여기에 무언가를 함으로써 꼭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건강 상태마저 등한시하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어딘가 너무 안 좋아진 이후에나 건강을 신경 쓰는 이들이 환경에 얼마나 신경을 쓸까?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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