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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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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10-12항]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10-12항] 10. 저는 매력적이고 감탄을 자아내는 한 인물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회칙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로마 주교로 선출되면서 저는 그분의 이름을 저의 길잡이요 영감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통합 생태론을 기쁘기 참되게 실천한 가장 훌륭한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생태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모든 이의 수호성인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사랑을 하였고, 또한 기쁨, 관대한 헌신, 열린 마음을 지녔기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자기 자신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살았던..
동일한 관심을 통한 일치[7-9항] 동일한 관심을 통한 일치 7. 교황들의 이러한 말씀들은 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과 시민 단체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사유를 풍요하게 해 준 모든 이의 성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밖의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 다른 종교들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우리 모두를 어지럽히는 문제들에 관한 소중한 성찰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좋은 예로, 제가 온전한 교회 친교의 희망을 나누고 있는 존경하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의 말씀을 간단히 인용하고 싶습니다. 8.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께서는 특히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구를 해친 것을 회개할 필요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생태적 피해를 일으키며" 우리가 "크든 작든 피조물의 변형과 파괴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3-6항]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 50여 년 전에 세계가 핵 위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무렵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전쟁 반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평화를 제안하는 회칙을 반포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가톨릭 세계"뿐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발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계적인 환경 악화에 당면하였기에 저는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선교 쇄신을 촉구하고자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썼습니다. 이제 저는 특별히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하여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누고자 이 회칙을 씁니다. 4. 『지상의 평화』..
찬미받으소서[1-2항] 1.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프란치스코 성인은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미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 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 * 피조물의 찬가(역자 주: '태양의 찬가로도 불림). 『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이라 FF). 263. 2.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조토 디 본도네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반포 7주년.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뀐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바꾼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서 바뀐 것들이 더 많으리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세상, 찬미받으소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유되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으로만 읽는 것에서 벗어나, 시간을 내서 찬미받으소서를 타이핑 하며, 나 역시 찬미받으소서를 다시 한번 묵상해 봐야겠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깊게...
아버지 지치고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이 곡을 찾았다.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는 이 곡은, 나를 심연에서부터 건져 올리고 있다. 주말만 되면, 가족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가라앉는지.. 끝도 없는 심연으로... 꿈도 없고, 답도 없는 세상. 그 안에서 생존이라는 것 조차도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내일, 내일 같은 모래. 그렇다면, 이 세상이 오늘 끝난듯 무엇이 다를까? 내일도 어제와 같을 진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곡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목말라 갈라진 내 영혼 친히 이끌어 주신 분 마르지 않는 샘이시여 주 하느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의 힘이 되어 주시는 분께 감사와 찬미를... 이 세상의 빛이여 나의 방패 나의 산성 주 하느님 하느님 내 아버지시여 무릎 ..
코로나19가 심하여 또다시 공동체가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었다. 코로나는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듯하다. 부정적인 단어를 피하고,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려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 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에 집중하고, 나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오늘은 간만에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생활성가 하나를 듣고자... 이번 주에 미사가 없는 대신 성지를 가볼 생각이라서 그런지 "꽃"을 선택해 듣고 있다. 당신이 가신 길 그 길가에 꽃들이 피어 하늘을 바라고 저 하늘은 햇살 가득 따스한 품을 열어주네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과 그 노랫소리가 나의 맘을 밝혀주네, 먼 길에 지친 나의 맘..
쓸데 없이 몸만 잡혀있는 공간에서 주어지는 시간속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자신의 몫 이 시간을 육체가 쉬는 시간으로 잡을지 사색의 시간으로, 관찰의 시간으로, 소통의 시간으로... 그 어떤 시간으로 만들지는 오로지 본인의 몫 잃어버린 시간으로 불평과 불만의 시간으로 만들지 말자. 하느님이 허락하신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늘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이 후일 되돌아 보더라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 되길 그것이 부끄러움의 시간이라면, 그리 느껴진다면, 최소한 그 시간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보기. 일간은, 나는, 노력할 뿐, 또 무의미한 후회의 시간을 보낼지는 모르지만 지금, 인지하고 있는 이 순간 만큼은 고민하고, 휴식하고, 즐기자 Coff 한잔의 여유라도 예전 Note에 쓰여있던 글. 2018년, 19년 언제 인지 모..